러셀 서양철학사 제2권 가톨릭철학 제1부 교부철학 5.5세기와 6세기*590쪽: 교회는 육화를 둘러싼 복잡한 논쟁으로 떠들썩했다. 논쟁의 주역은 키릴과 네스토리우스라는 두 성직자였다. -논란의 쟁점은 그리스도의 신성함과 인격의 관계였다. *593쪽:451년 칼케돈 공의회는 롯카(六花)를 전통 교리로 결의했다. 그리스도에게 두 가지 본성, 즉 인성과 신성이 존재한다고 결의했다. *599쪽: 먼저 영적 실체가 부여한 대의로 돌아가 사랑하지 않고서는 이 세상 그 무엇도 영속할 길이 없다. 6. 성 베네딕투스와 그레고리우스 대교황*607쪽: 학식을 가지고도 무지함을 가르쳤고 배우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지혜를 터득했다. *611쪽:유스티니아누스는 덧없는 정복이 아니라 법전 제정으로, 베네딕투스는 수도회 설립으로, 그레고리우스는 교황 권력을 증대시킴으로써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 *619쪽:6세기 사람들은 선대 사람들보다는 문명을 발전시키지 못했지만 후대인 4세기 동안 살았던 사람들보다는 문명을 더 발전시키고 제도 형성에 성공했으며 궁극적으로 야만족을 길들이는 데도 성공했다. -로마는 로마 시를 정복한 자들의 영혼에 로마의 족쇄를 채우는 데 성공했다. 제2부 스콜라 철학 7. 암흑기의 교황권*629쪽: 교황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둘 다 살아남았고 교황은 오늘날까지 존속했으며 황제는 나폴레옹 시대까지 존속했다. 그러나 황제와 교황의 권력을 둘러싸고 형성된 중세의 정교한 권력이론은 15세기에 효력을 잃었다. *635쪽: 어떤 직책의 권한은 맡은 자의 정력과 기민한 행동에 의해 강해지거나 약해졌다. 러셀 서양철학사 제2권 가톨릭철학 제1부 교부철학 5.5세기와 6세기*590쪽: 교회는 육화를 둘러싼 복잡한 논쟁으로 떠들썩했다. 논쟁의 주역은 키릴과 네스토리우스라는 두 성직자였다. -논란의 쟁점은 그리스도의 신성함과 인격의 관계였다. *593쪽:451년 칼케돈 공의회는 롯카(六花)를 전통 교리로 결의했다. 그리스도에게 두 가지 본성, 즉 인성과 신성이 존재한다고 결의했다. *599쪽: 먼저 영적 실체가 부여한 대의로 돌아가 사랑하지 않고서는 이 세상 그 무엇도 영속할 길이 없다. 6. 성 베네딕투스와 그레고리우스 대교황*607쪽: 학식을 가지고도 무지함을 가르쳤고 배우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지혜를 터득했다. *611쪽:유스티니아누스는 덧없는 정복이 아니라 법전 제정으로, 베네딕투스는 수도회 설립으로, 그레고리우스는 교황 권력을 증대시킴으로써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 *619쪽:6세기 사람들은 선대 사람들보다는 문명을 발전시키지 못했지만 후대인 4세기 동안 살았던 사람들보다는 문명을 더 발전시키고 제도 형성에 성공했으며 궁극적으로 야만족을 길들이는 데도 성공했다. -로마는 로마 시를 정복한 자들의 영혼에 로마의 족쇄를 채우는 데 성공했다. 제2부 스콜라 철학 7. 암흑기의 교황권*629쪽: 교황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둘 다 살아남았고 교황은 오늘날까지 존속했으며 황제는 나폴레옹 시대까지 존속했다. 그러나 황제와 교황의 권력을 둘러싸고 형성된 중세의 정교한 권력이론은 15세기에 효력을 잃었다. *635쪽: 어떤 직책의 권한은 맡은 자의 정력과 기민한 행동에 의해 강해지거나 약해졌다.
터키에 있는 아야소피아 대성당 터키에 있는 아야소피아 대성당
*638쪽: 노르만족은 사라센족이 정복한 시칠리아를 탈환하고 이슬람교도의 침입으로부터 이탈리아를 안전하게 지켰다. 이들은 데인족이 로마 세계에서 분리된 잉글랜드를 다시 로마 세계로 복귀시키고 노르망디에 정착해서는 프랑크 왕국을 부활시켜 물질적 발전을 도왔다. *640쪽: 문화제국주의는 권력을 앞세운 제국주의보다 더 넘기 어려운 장애물이다. 8. 요한네스 스코투스의 사상*640쪽: 그는 아일랜드인으로 신플라톤학파에 속했으며 그리스어에 조예가 깊고 펠라기우스주의자이자 범신론자였다. -그는 신앙 위에 이성을 두고 성직자의 권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성직자들의 논쟁을 중재해 해결하기도 했다. -7세기 후반 지식에 대한 갈망이 가장 강한 곳은 아일랜드였고, 교육 사업이 가장 활발했던 곳도 아일랜드였다. *644쪽: “진정한 종교는 진정한 철학이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참된 철학은 참된 종교라고 말하기도 한다. *646쪽: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 <자연구분론>-자연 속에 존재뿐 아니라 비존재도 포함시켰다. 자연 전체를 4가지 부류로, 즉 (1) 창조하고 창조되지 않는 것 (2) 창조하고 창조되는 것 (3) 창조되지만 창조되지 않는 것 (4) 창조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는 것으로 나눈다. 9. 11세기 교회개혁*651쪽: 11세기가 막을 내릴 무렵에 최초로 스콜라 철학자가 배출되었다. -교육 수준은 성직자 계급에서 상당히 높아졌고, 세속 귀족 계급에서도 상당히 올라갔다. *655쪽: 성직자 계급이 권력의 원천인 존경을 얻기 위해서는 결혼생활을 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확실히 구별되는 것이 매우 유리했다. -정말 신성한 사람은 당연히 욕망을 ‘억제’할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성직자의 독신 생활은 교회의 도덕적 권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핵심 요소였다. -사유재산의 소유와 권력의 세습을 막기에 가장 적합한 제도 10. 이슬람교 문화와 철학*671쪽: 무함마드의 종교는 육화신학으로 얽히지 않는 단순한 일신교였다. -그는 조각한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유대인 풍습을 부활시켰고 와인 사용도 금지했다. -누구나 세금을 낸다면 ‘성경의 백성’도 박해하지 않았다. -주민 대부분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기독교를 버리고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675쪽: 이슬람교도는 인도와 접촉하게 되었다. 이슬람교도들은 산스크리트어 저술을 통해 8세기에 처음 천문학 관련 지식을 얻었다.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수학 천문학 책을 번역한 무함마드 이븐 무사알 팔리즈미는 830년경 인도 숫자 계산법이라는 책을 펴냈다가 12세기 라틴어로 번역됐다. 이 책을 통해 서양에 처음 아라비아 숫자가 알려졌으니 인도 숫자라고 불러 마땅하다. 알파리즈미는 대수학 책도 썼지만 서양에서 16세기까지 교과서로 썼다. *638쪽: 노르만족은 사라센족이 정복한 시칠리아를 탈환하고 이슬람교도의 침입으로부터 이탈리아를 안전하게 지켰다. 이들은 데인족이 로마 세계에서 분리된 잉글랜드를 다시 로마 세계로 복귀시키고 노르망디에 정착해서는 프랑크 왕국을 부활시켜 물질적 발전을 도왔다. *640쪽: 문화제국주의는 권력을 앞세운 제국주의보다 더 넘기 어려운 장애물이다. 8. 요한네스 스코투스의 사상*640쪽: 그는 아일랜드인으로 신플라톤학파에 속했으며 그리스어에 조예가 깊고 펠라기우스주의자이자 범신론자였다. -그는 신앙 위에 이성을 두고 성직자의 권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성직자들의 논쟁을 중재해 해결하기도 했다. -7세기 후반 지식에 대한 갈망이 가장 강한 곳은 아일랜드였고, 교육 사업이 가장 활발했던 곳도 아일랜드였다. *644쪽: “진정한 종교는 진정한 철학이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참된 철학은 참된 종교라고 말하기도 한다. *646쪽: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 <자연구분론>-자연 속에 존재뿐 아니라 비존재도 포함시켰다. 자연 전체를 4가지 부류로, 즉 (1) 창조하고 창조되지 않는 것 (2) 창조하고 창조되는 것 (3) 창조되지만 창조되지 않는 것 (4) 창조하지 않고 창조되지 않는 것으로 나눈다. 9. 11세기 교회개혁*651쪽: 11세기가 막을 내릴 무렵에 최초로 스콜라 철학자가 배출되었다. -교육 수준은 성직자 계급에서 상당히 높아졌고, 세속 귀족 계급에서도 상당히 올라갔다. *655쪽: 성직자 계급이 권력의 원천인 존경을 얻기 위해서는 결혼생활을 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확실히 구별되는 것이 매우 유리했다. -정말 신성한 사람은 당연히 욕망을 ‘억제’할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성직자의 독신 생활은 교회의 도덕적 권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핵심 요소였다. -사유재산의 소유와 권력의 세습을 막기에 가장 적합한 제도 10. 이슬람교 문화와 철학*671쪽: 무함마드의 종교는 육화신학으로 얽히지 않는 단순한 일신교였다. -그는 조각한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유대인 풍습을 부활시켰고 와인 사용도 금지했다. -누구나 세금을 낸다면 ‘성경의 백성’도 박해하지 않았다. -주민 대부분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기독교를 버리고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675쪽: 이슬람교도는 인도와 접촉하게 되었다. 이슬람교도들은 산스크리트어 저술을 통해 8세기에 처음 천문학 관련 지식을 얻었다.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수학 천문학 책을 번역한 무함마드 이븐 무사알 팔리즈미는 830년경 인도 숫자 계산법이라는 책을 펴냈다가 12세기 라틴어로 번역됐다. 이 책을 통해 서양에 처음 아라비아 숫자가 알려졌으니 인도 숫자라고 불러 마땅하다. 알파리즈미는 대수학 책도 썼지만 서양에서 16세기까지 교과서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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